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한 특징은 그분의 사랑이 온전하였다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면에서 온전히 사랑하셨는가?
그것은 따뜻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얼마나 멀리까지 가든 언제나 따뜻하다. 그것은 마치 태양과 같다. 그분의 밝은 태양에 비하면, 우리의 사랑은 반짝이는 별들과 같다.
그분의 치유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보다 훨씬 큰 이유는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들도 주님께는 매우 쉽다.
예수님의 사랑은 치유하는 특성이 있다. 그 사랑이 닿는 즉시 치유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질병을 건강으로, 죄를 성스러움으로 바꾼다.
예수님의 사랑은 전염성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주님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된 그들로부터 다시 흘러나간다.
참으로 그 사랑은 매우 전염성이 강해서,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눈과 얼굴 표정에서 사랑을 볼 수 있고 그들의 음성에서 사랑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그저 편안한 상냥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한 힘이었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아니었다.
무섭고 강한 바람이었다.
주님이 근처에 계시면 사람들은 그 사랑을 느꼈다. 병든 자, 약한 자, 절망에 빠진 자들은 그분의 사랑이 그들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고, 철이 자석에 붙듯 그분에게로 몰려들었다. 통치자들과 압제자들도 그것을 느꼈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것은 개인의 자력이 아니었다. 의지의 힘도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하고, 강하고, 불가항력적인 사랑이었다.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죽는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가셨다. 그분은 선한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었던 사람들, 그분의 죽음을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다.
우리를 도우려는 그분의 열정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겠는가. 우리가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혐오스럽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우주의 모든 천사들이 우리 같은 피조물을 혐오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가증스러움을 사랑스러움으로 바꾸기 위해 그분이 죽으신 것이다. 우리는 속절없이 죄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신 것이다.
그분은 죄인들뿐 아니라 그분의 원수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다. 그랬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이렇게 외치실 수 있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강렬하고 헌신적인 이 사랑의 힘으로 주님은 세상을 구원하신다.
† 말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로마서 3장 10~12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 8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 갈라디아서 1장 4절
† 기도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본받게 하시고 온전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우리를 향한 그 사랑에 감사하며 온전하신 그분의 사랑을 본받아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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