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그 사건 사고에 갇혀 사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 잡혀 살고, 아픔에 잡혀 살고, 고독에 갇혀 산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사명이 다시 일어나게 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역사를 증거하는 사람이 된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동행에 집중한다.
상황에 집중하면 상황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이 눈에 들어온다.
나만의 고통과 아픔만이 아니라 이웃을 품고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타인을 위하여 대가 없이 헌신하고 섬기는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다.
사명자만 그리 산다.
‘제가 아픕니다. 전 억울해요.’
저마다 자기가 처한 혹독한 상황을 토로하기 바쁘다.
하지만 사명자는 남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남의 눈물이 나의 눈물로 다가오는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품는다.
교회가 선교와 긍휼에 집중하지 않으면 친교단체로 전락하고 만다.
사명의 자리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역사도 없다.
요셉이 그들의 아픔을 가슴에 품는다.
그리고 그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를 물으며 먼저 다가간다.
“무슨 일입니까? 왜 이리 힘들어하십니까?”
자신은 종노릇 하다가 누명 쓰고 감옥에 들어왔다.
상대방은 감옥에 들어오기 전 제일 잘나가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감옥에서 요셉이 그들을 섬긴다.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답이 안 나오는 일들이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사명자로 살았던 요셉은 그렇게 했다.
우리 역시 그 일들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똑같은 감옥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근심과 절망의 장소였고,
누군가에게는 사명의 자리였다.
그들이 꿈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은사를 주셔서 꿈을 알게 하시고 설명하게 하신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하는 일’이라고 고백한다.
꿈을 푸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 40:8
여기서 중요하게 나누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적 능력이 아니라 요셉이 가진 긍휼의 마음이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중에도 사람들의 근심을 돌보는 긍휼한 마음.
그 마음이 감옥이 더 이상 감옥 되지 않게 한 능력이다.
코로나를 핑계로 전도하지 않은 채 지낸 것이 벌써 1년이 넘었다.
어려운 상황에도 당신은 사명을 붙잡고 살고 있는가?
똑같은 감옥인데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자리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명의 자리다. 고난과 억울함에 갇혀서 살 수도 있겠지만, 사명자로 살아갈 수도 있다.
흔히들 가장 쉬운 고통이 지나간 고통이고 남의 고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명자는 아니다.
사명자는 이웃의 고통을 가슴에 안는다.
이웃의 눈물을 가슴에 품는다.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한다.
사명자의 기도 제목 우선순위에는 이웃의 기도 제목이 올라가 있다.
나를 위한 기도에서 이웃을 위한 기도로 삶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나를 공격할 때도 하나님 사람의 모습으로 대처한다.
상황 탓, 사람 탓 안 하고 하나님과 동행한다.
예수 믿는 믿음을 겨우 겨우 붙들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
매일매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홍민기
† 말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 욥기 23장 10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 이사야 43장 2절
† 기도
마음이 어렵고 힘들 때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웃을 돌아보며 그들의 아픔을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적용과 결단
매일매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상황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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